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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불평등에 맞서는 생애주기자본금 / 김만권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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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 ㅣ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당대 불평등의 원인이 노동소득보다 훨씬 커진 자본소득, 더하여 그 자본소득이 다음 세대로 세습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자본소득의 세습이 사회계층 간 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지고 불평등이 고착화되는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피케티는 그 해결책으로 후속작인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모든 구성원들에게 사회가 똑같은 몫을 상속해주자고 제안한다. 예를 들어 1인당 평균자산이 20만유로인 프랑스에선, 이의 60%에 해당하는 12만유로를 25살이 되는 모든 청년들에게 배당하자고 한다. 이런 피케티의 혁신적 제안은 역사적으론 200년이 넘은, ‘구성원 모두에게 사회가 상속하자’는 ‘기초자본’(basic capital)이란 발상에서 나왔다. 이 기초자본에는 두 가지 설계방식이 있다. 첫번째는 일정 연령에 이른 이들에게 일정한 몫을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모델이다. 바로 피케티의 제안이 이에 해당한다. 두번째는 출생한 아이들에게 정치공동체가 계좌를 열어 일정 금액을 넣어주고 돈을 굴려서 성년에 지급하는 모델이다. 영국에서 2003년 시행된 ‘아동신탁기금’이 이 모델을 따라 설계된 대표적 제도다. 노동당이 주도한 이 실험적 제도는 2011년 권력을 잡은 보수당이 폐기해버려 불행히도 그 결과를 볼 수 없게 됐다. 이 ‘기초자본’은 최근 우리에게 익숙해진 ‘기본소득’과 더불어 ‘노동 유무’와 ‘자산소유의 정도’를 분배 기준으로 삼지 않는,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자격만으로 모두가 배당받는 대표적 제도다. 이처럼 궤를 같이하고 있지만 기초자본은 기본소득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기본소득은 그 시행과 더불어 모든 구성원들이 혜택을 보는 제도인 반면, 기초자본은 시행되는 해 성년에 이른 이들부터 배당된다는 점에서 제도를 승인하는 유권자들은 직접적 수혜를 누릴 수 없다는 결정적 단점이 있다. 그렇다 보니 이 제도에 관해 관심 역시 제한적이다. 그런데 실천적 차원에서 들여다보면 기초자본은 기본소득보다 훨씬 더 가용한 제도다. 무엇보다 재원의 측면에서 그렇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을 시행한다면 10만원당 60조원이 필요하다. 30만원을 지급한다면 180조원 정도가 든다. 올해 우리나라의 복지예산과 맞먹는 규모다. 반면 기초자본은 설계하기에 따라 기본소득의 10% 정도의 예산도 소요되지 않는다. 18조원 정도만 있어도 내년 20살이 되는 모든 청년들에게 3천만원씩 배당할 수 있다. 기본소득 10만원을 지급하는 데 드는 비용의 3분의 1보다 적다. 두번째 ‘베이비 모델’을 따라 설계한다면 그 비용을 더 현격하게 줄일 수도 있다. 실제 영국의 아동신탁기금은 영국 교육재정의 0.5~1% 범위로 설계된 제도였다. 하지만 기초자본은 앞서 언급했듯 직접적 수혜자가 아닌 대다수 유권자들에게 기본소득보다 매력적이지 않다. 게다가 내게는 없는 계층이동의 기회가 다른 구성원들에게만 주어진다면 상대적 박탈감을 크게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기초자본은 유권자들에게 매력 없는 제도로 남겨질 수밖에 없는 걸까? 여기서 필자는 기초자본을 대다수 유권자들에게 보다 호소력 있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제도로 만들기 위해, 생애주기별로 20년마다 지급하자고 제안한다. 스스로 설계 가능한 생애를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로 나누고 각 주기의 시작에 해당하는 20살, 40살, 60살에 각 생애주기를 설계할 수 있는 목돈을 주자는 것이다. 이런 제안은 아동 빈곤이 청년 빈곤으로, 청년 빈곤이 중·장년 빈곤, 다시 노년 빈곤으로 이어지는 빈곤의 생애영속성을 드러내는 실제 통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 구성원들은 ‘생애주기 자본금’을 통해 각 주기별로 빈곤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게나마 새로운 인생설계를 할 수 있는 기회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 설계모델을 따라 주기별로 3천만원을 배당한다면 70조원 정도가 든다. 기본소득 12만원에 상응하는 규모다. 베이비 모델을 따라 설계하면 그 비용을 10% 수준까지 줄일 수도 있다. 피케티의 주장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세대 간 세습되는 자본소득’으로 인해 ‘끊어진 계층 간 사다리’가 불평등의 주요 원인이라 한다면, 기초자본을 변형시킨 ‘생애주기 자본금’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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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30, 2020 at 04:28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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