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의 외주화' 지속…변한 것 없는 노동현장 "말로만 개선"
전태일 열사가 숨진 이후 우리 사회에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지만, 노동 현장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작업 중 하루가 멀다 하고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등 대한민국은 여전히 '산업재해 사망률 세계 1위 국가'란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변하지 않은 노동 현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바로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태안화력)다.
태안화력에서는 2018년 12월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어두컴컴한 발전소 안에서 컨베이어벨트 밑에 쌓인 석탄을 긁어모으다 숨졌다.
올해 9월에는 협력업체와 계약한 화물차주가 2t짜리 스크루 5대를 자신의 화물차에 옮겨 싣고 끈으로 묶는 과정에서 갑자기 굴러떨어진 스크루에 깔려 사망했다.
한 공간에서 2년도 채 안 된 사이 2명의 노동자가 작업 중 안전조치 미흡 등 비슷한 이유로 스러진 것이다.
안전불감증이 빚은 참사란 지적을 받는 이유다.
형식적이던 '2인 1조 근무제'가 김용균 씨 사망 이후 어느 정도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어두운 환경에서 뿌연 먼지를 뒤집어쓴 채 일하기는 매한가지라는 것이다.
이태성 한전산업발전노조 사무처장은 "큰돈을 들여 설비와 제도를 개선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다"며 "발전소 측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고 김용균 노동자가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서 비참하게 숨진 이후 노동계를 중심으로 작업 환경 개선에 대한 여론이 확산하기 시작했다.
이런 여론에 따라 꾸려진 민관협의체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김용균 특조위)가 수 차례의 토론과 현장 조사를 거쳐 작업현장 안전 강화 방안 등 22개 항으로 이뤄진 권고안을 제시했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태안화력에서 또다시 사망사고가 발생한 직후 고용노동부의 대대적인 산업안전보건 감독 결과 무려 314건의 법규 위반사항이 적발됐다.
노동현장이 크게 변하지 않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조치 내용을 보면 사법 조치 168건(원청 162건·17개 협력업체 6건), 사용 중지 21건(모두 원청), 시정명령 200건(원청 193건·협력업체 7건), 시정지시 12건(원청 10건·협력업체 2건) 등이다.
고용노동부는 이 가운데 위반 내용이 중한 것으로 판단되는 168건에 대해 원청인 태안화력 책임자·법인, 협력업체 책임자·법인을 형사입건하고, 과태료 2억2천만원을 부과했다.
원청인 태안화력의 주요 의무 위반 사례를 보면 사전 지게차 운행에다 중량물 취급작업 때 작업계획서 미작성, 사업장 주변에 추락 방지 장치 미설치 등 여러 허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또 질식 예방을 위한 밀폐공간 관리가 미흡했고, 작업허가서를 형식적으로 발행하는 등 발전소 내 안전보건 관리도 부실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조금만 신경 쓰면 할 수 있는 일을 방치한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번에 적발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을 모두 개선할 것을 한국서부발전 등에 명령했다.
노동계는 사망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당국의 지도 감독은 물론 김용균 특조위 권고안의 철저한 이행과 함께 책임 있는 주체가 법적 책임을 지도록 하고 생명보다 이윤을 더 중히 여기는 기업을 가중처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태성 사무처장은 "특조위 권고안이 휴짓조각으로 전락할 상황에 놓였다"며 "정부는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다시 시작하라"고 촉구했다.
고 김용균 씨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는 "용균이가 숨진 이후 20개월 만에 원청과 하청업체 책임자 14명이 기소됐지만,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원청·하청업체 책임자들은 위험을 계속 방치하고 비정규직 고용구조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신현웅 정의당 충남도당위원장도 "태안화력과 같은 노동현장의 사망사고를 예방하려면 사고를 일으킨 기업 등에 엄중한 책임을 묻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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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12, 2020 at 07: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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